11월에 읽은 책
1. 루추차, 원년 봄의 제사.
고대 중국을 배경으로 한 중국 여성작가의 추리소설이라는 얘기에 주저 없이 가져온 책으로 (작가가 여성인줄 알았는데 남성이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 - 09.03.2020) 중2병 똑똑한 소녀가 주인공인 김전일급 스케일의 소설. 읽으면서 똑똑한 덕후의 느낌이 들었는데 역시나 저자 후기를 보니 그 느낌이 맞았고, 이래저래 (좋은쪽으로든 나쁜쪽으로든) 주인공에 작가가 많이 투영된 느낌. 어딘가 아쉬운 부분이 많았던 작품이지만 작가가 조금만 더 잘 정리할 수 있다면 앞으로 그만큼 더 좋은 작품을 쓸 수 있지 않을까하는 기대는 하게 만듦. (그리고 부제인 '무녀주의 살인사건'에서 '무녀주'가 무슨 뜻인지 잘 모르겠다....)
2. 에리히 프롬, 나는 왜 무기력을 되풀이하는가
사실 얼핏보면 제목의 질문에 접근하는 것은 얇은 분량중에서도 중간쯤 넘어서야 이르는듯한 인상을 주기도 하지만 아무튼 이 질문을 비롯하여 현대인이라는 한 개인이 겪는 문제들에 접근. 결론은 현대사회에 살아가면서 개인은 자신이 원하는 삶이 아닌 타인이 원하는 삶을 살아가기 때문이고, 설령 본인은 그렇다고 자부한다하더라도 대다수의 경우는 그 역시 그렇게 보이도록 만들어진 것이다, 정도가 아닐까 싶은데 명료한 분석이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현대사회에서 프롬식의 “진정한” 자아 찾기가 얼마나 가능할지는 살짝 의심스럽기도.
3. 윌리엄 M. 레디, 감정의 항해
감정사 책을 읽어보고 싶었던 차에 우연히 발견했던 책. 다방면에서 이루어진 기존의 감정연구 진행 과정을 서술한 다음 이모티브 이론이라는 자신의 관점을 마련하고, 이를 17세기 프랑스 혁명 전야부터 19세기 왕정복고 시기까지의 시기에 이를 적용해보는 방식으로 서술. 감정을 다루다보니 1부에서부터 심리학, 인류학, (포스트) 구조주의와 포스트 모더니즘 모두를 아우르고 있으나 사실 아직도 내가 얼마나 잘 이해했는지는 모르겠다. 그만큼 이래저래 읽는데 어려웠던 책.
다만 저자가 이모티브 이론을 내세우고 실제 사례에 적용하는 과정에서 계속해서 서구 근대성이라는 선입관에서 벗어나기 위한 노력임을 역설했고, 저자가 신경쓰고 주의하고 있음을 알겠지만서도 과연 거기에서 얼마나 벗어날 수 있었는지는 - 책 말미에서 역자가 말한대로 - 한 번 더 생각해봐야 할듯.
4. W. G. 제발트, 토성의 고리
몇 년 전부터 (아마도) 한국에서 주목받기 시작한 제발트의 소설. 읽으면서 상당히 특이하다는 인상을 받았는데 치밀하고 박학다식한 찬호박급 투머치토크 서술이 놀랍고, ‘스러져가는 모든 것을 안타까워하는’ 마음이 시종일관 그 안을 관통하고 있는 점도 포인트. 이래저래 인상깊은 소설이지만 그렇다고 내 스타일의 소설이냐면 그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