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에 읽은 책 + 2020년 정리
한 달 동안 읽은 책에 대해 매달 간단하게 정리하고 연말에는 그 해 읽은 책 중 괜찮은 것을 다시 골라 보려고 하는데 항상 잊고 있다가 때가 되서야 떠오르는 것이, 12월의 책과 연말 결산은 어찌하는가이다. 마지막 달이라 해도 아직 읽는 책이 있으니 정리도 안못한 상황에서 연말결산을 하는 것도 이상하고, 그렇다고 해를 넘겨 하는 건 더 이상하다보니까. 누가 신경이나 쓰겠냐만 연말에 우왕좌왕하다 어찌어찌 넘어가지 않나 싶다. 아마 2021년 12월/연말 결산하게 되면 또 이러겠지. 아무튼 각설하고.
1. 헤밍웨이, 깨끗하고 밝은 곳
노벨 문학상 수상 연설을 포함해 헤밍웨이의 단편 다섯 작품이 실린 책. ‘킬리만자로의 눈’은 예전에 원서로 봤었는데 여기에 실린 덕에 한 번 더 볼 수 있었다. (잘 아는 건 아니지만) 흔히 생각하는 건조하고 간결하지만 그렇다고 마냥 바로 넘길 수 없는 헤밍웨이의 스타일을 잘 느낄 수 있는 단편들을 잘 모은 책인듯 싶음.
2. 페니, 스틸 라이프
2020년 올해의 책에서 이야기 했지만 “스틸 라이프”에서 봤던 서정적이고 느린 호흡의 묘사는 사실 최근 봐왔던 추리 소설에서 볼 수 없었던 스타일이라 처음 읽기 시작할 무렵에는 적응하기 힘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재미가 없냐면 물론 아니었고, 인물 묘사도 신중하면서 섬세한 느낌.
3. 아렌트, 전체주의의 기원 1
봄에 읽으려다가 중간에 그만둔 책이라 해가 가기 전에 다시 읽어보려고 집어들었다. 하지만 결국 2권은 해를 넘겨버리고 말았고... 아무튼 이 글을 올리는 지금은 2권도 다 읽긴 했지만 1월에 읽은 책들을 정리해서 올릴때 1, 2권같이 하려고 한다. 사실 전에 읽던 책 한참 기간 두고 다시 읽은 것도 있고, 연말에 약간은 의무감에 읽은 것도 있어서 내용을 잘 따라갔는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다.
4. 매컬로, 카이사르 1-3
마스터스 오브 로마 시리즈 5부. 크라수스와 카이사르의 딸이자 폼페이우스의 부인인 율리아가 사망하면서 삼두 체제가 무너지고 카이사르와 폼페이우스의. 내전으로 치닫는 과정까지 다룬 소설. 그동안 열심히 어그로를 끌어왔던 소 카토는 정말 이보다 더 할 수 없는 밉상짓을 선보여줬다는 것의 이번 파트의 포인트.
고대 로마라는 익숙하지 않은 사회가 배경이니 이래저래 설명이 필요하지 않을 수 없겠지만 전체 시리즈의 절반을 넘긴 상황에서도 자세한 설명이 반복되니까 조금 피곤하게 느껴진 건 부정 못하겠다. 그렇다고 다 아는 것도 물론 아니고, 인물들도 수 없이 계속 등장과 퇴장을 반복하는 마당에 한참 안나오다 오랜만에 등장한 인물 보면 한동안 기억에서 되살리느라 고생하니 작가의 노력이 헛수고는 아닐듯. 그래도 책의 이런 모습이 어지간한 로마사 책보다 더 로마사에 충실하다는 얘기를 들을 수 있었던 이유이겠으나...... 여성들의 이야기도 계속 비중있게 다뤄져서 좋았지만, 5부에서 특히 더 눈길이 갔던 것은 경제적인 이야기들로 스토리를 풀어나가는 모습이었다. 왜 하필 5부에서 그랬나?라는 질문에는 딱히 뭐라고 대답하기 힘들지만서도.
5. 톰슨, 영국 노동 계급의 형성
독일에서 무료한 연말(?)을 몇 번 보내다가 문득 든 생각이 톰슨의 “영국 노동 계급의 형성”과 “윌리엄 모리스”를 번갈아 다시 읽어보면 어떨까하는 왜 굳이 그런 이상한 생각이 들었고, 2019년 12월에 “형성”으로 시도했으나 결국 실패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때까지 한 여섯번 정도 읽기 시도 해서 딱 한 번 어찌어찌 다 읽었던, 그런 책이었고, 그러다 이번 겨울에 결국 다시 다 읽을 수 있었다. 내 전공 분야에서 고전으로 손꼽히는 명작이라 하더라도 그만큼 분량이나 내용 면에서 쉽지는 않은 책이다 보니...라고 변명을 해 보지만 아무튼 두 차례의 통독과 (그보다 더 많은) 실패를 거듭한 끝에 드는 생각은 확실히 잘썼다.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고, 그냥 이렇게 한 마디로 끝낼 수는 없지만 정말 잘썼다. 그리고 그 인상은 다시 보니까 더 잘 알 것 같다. 잉글랜드 지방에서 노동자 계급이 만들어가는 과정을 단순히 경제적 원인에서만 주목하지 않고 잉글랜드 전통의 자유민 사상과 프랑스 대혁명의 영향, 감리교와 같은 비국교도 전통 등을 광범위하고 설득력있게 다루면서 생활수준 논쟁을 이끌고 마지막으로 온건 개혁 노선과의 관계를 다루는 점들이 전보다 조금 더 잘 보였지 않았나 싶다.
몇 년 전에 처음 다 읽었을 때는 약간의 의무감에서, 이번에 다 읽을 때는 그 점에서 약간은 자유로워진 만큼 편한 마음으로 재미있게(?) 읽었으니, 다음에 읽을 때는 또 어떨지 궁금하기도 하다. 다만 이 동네 있을 동안에 그럴 일은 안오길 바랄 뿐이지...
6. 2020년 정리
코로나 상황은 어찌보면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책 읽기에는 참 좋은 시절일텐데 한 해 동안 읽은 책들을 살펴보니 딱히 그러지도 못했다. 작년보다 읽은 책이 약간 많긴 했지만 지금 이 상황을 받아들이고 있는 내 심정이 예상 외로 좋지 않아서일 수도, 그래도 읽어봐야 한다는 (아무도 만들지 않은) 의무감에 읽은 책들이 많아서일 수도 있고. 물론 둘 다 해당되는 사항일 수도 있겠지.
아예 기록을 안남기는 것보다는 낫겠지 하는 마음에서 시작했지만 막상 쓰기 시작하니까 초중고생 독서감상문 보다는 그래도 잘 써야 하지 않겠나 하는 압박감이 생각보다 크다. 대학원 다닐적 서평 과제에 안좋은 추억까지 있다보니. 특히 전공관련한 책에 대해서는 더 말할 것도 없고. 그냥 매달 말부터 대충 기억나는대로 썼다가 조금씩 정리해서 그 다음달에 올리는데, 읽으면서 / 읽고 나서 바로 쓰면 좀 괜찮아질려나? 사실 이것도 의외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일이다보니 다음부터 그래야겠다고 생각만 하고 계속 그러질 못하고 있다.
매년 말에 어떤 책을 읽었는지 한번 돌아볼 때마다 그래도 구색맞추기 용으로라도 영어/독어 책들이 한 권씩은 들어갔는데 이번에는 그러지도 못했다. 그러니까 제대로 읽은 게 없다는 말이다. 여기까지 나와서 이래도 되는 것인지는 사실 언제나 고민이지만. 21년에는 꼭 원서들로 서평을 쓸 수 있으면 좋겠다.
늘 그래왔듯이 2020년에 읽은 책들은 엑셀로 정리하여 첨부로 같이 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