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sce aut discede

12.01.21 이렇게 정리하면 안된다

Gruentaler 2021. 1. 14. 06:09

Pontus Hiort, Constructing Another Kind of German: Catholic Commemorations of German Unification in Baden, 1870-1876, in: The Catholic Historical Review, Vol. 93, No. 1 (Jan., 2007), pp. 17-46.

 

모처럼 논문에 - 특히 서론이나 결론 등에서 큰 맥락과 연관성을 언급할 때 - 직접 도움이 되는 2차문헌을 읽어서 좀 고무가 되긴 했으나 다른 한 편으로는 30페이지 분량의 영어 논문을 읽고 정리하는데 한나절이 걸렸다는 사실에 어쩌면 좋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사실 읽는 작업보다 정리하는 쪽에 시간이 워낙 오래 걸려서 그러는데, 개선의 여지가 별로 없어보이니 참 걱정이다. 외국어 텍스트를 읽는다는 생각에 제대로 읽지 않으면 안된다고 먼저 겁먹는 게 습관이 된 탓에 하다보면 나아지겠지의 문제는 아닌 것 같다.

 

 1871년 독일 제국 통일 이후 바덴 개신교-자유주의자들은 계속해서 프로이센-오스트리아 및 프로이센-프랑스 전쟁과 소독일주의식 통일을 온전히 자신만의 공으로 만들고 가톨릭 교도들은 여기에 기여는 커녕 오히려 이적행위를 하였다고 주장하였다. 현행 연구는 대체로 가톨릭계는 이러한 공격에 수세에 몰려 수동적으로 대응했다고 보지만, 이 논문은 그 대응이 적극적이었음을 주장한다. 그 근거로 세당 승전일과 같은 통일 관련 기념 행사나 발언 등을 제시하고 있는데, 참고 자료들이 주로 당대 언론에서 비롯하고, 전후 맥락 설명 차원에서 선거도 상세하게 다루고 있기 때문에 이 점에서 참고할만한 내용이 많았다.

 가톨릭 진영은 종교를 기준으로 독일성, 국민 정체성을 정의하려는 개신교-자유주의 진영에 맞서 적극적으로 저항하면서, 상대방의 이러한 시도는 민족주의를 국수주의로 타락시킨다고 경고했다. 진정한 애국심은 패전측에 대한 동정심이 포함된 인간적 측면이 더해져야하며, 그렇기 때문에 자신들은 '더 나은 독일인', '더 나은 민족주의'를 지향하고 있다는 방식으로 독일성이나 국민 정체성을 새롭게 정의를 내려 한다. 

 양측의 갈등 양상은 일종의 '역사 다시 쓰기' 작업을 통해 격화되었고, 개신교-자유주의 진영의 의도적인 가톨릭 배제는 오히려 양측의 차이를 극복할 수 없을 정도로 만들었디. 개신교-자유주의는 계속해서 통일 과정에서 가톨릭의 역할을 최대한 부정하려 한 반면에 가톨릭계는 전쟁에서 자신들의 기여도와 프로이센-오스트리아 전쟁 당시 개신교-자유주의자들의 애매한 태도와 물질주의적 가치 지향, 비스마르크의 의도 등을 강조하면서 반박하였으나 결과적으로 이들의 대응은 그렇게 효과적이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결국 바덴에서 승전과 통일 관련 행사에 대하여 밝힌 양측의 언급들은 통일이 되었다고 종교, 지정학적 배경에서 비롯한 기존의 다양한 정체성을 한번에, 또 하나의 새로운 정체성으로 대체되지 않음을 보여준다. 오히려 이러한 새로운 요소는 기존에 존재하던 차이를 더욱 강화. 자신들의 정체성이 새로 창건된 독일이 아니라 로마로 향한다는 개신교-자유주의 진영의 비판에 가톨릭 진영은 다양한 정체성이 공존하고 있고, 또 가능하다고 대응하였다. 즉 이 문제를 둘러싼 양측의 갈등은 결국 독일성과 국민 정체성의 형성에서 종교적 요소가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했음을 드러내고 있다.

 가톨릭 교도들의 주장이 생각만큼 영향력이 없었던 이유로 저자는 우선 대응 논리가 피상적이고 제한적이었기 때문이고, 그 다음으로는 바덴이 워낙 자유주의적인 전통이 강한 지역이다보니 가톨릭 교도들도 자유주의에 상당 기간 동안 대단히 우호적이었다고 언급하지만, 이에 대한 보충 설명이 필요하지 않았나 싶다. 사실 이게 내 작업에서 좀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하는데 아무도 답을 안주고 있.... 분량상의 이유이기도 하겠지만 왜 바덴에 주목하였는지에 대한 설명도 약간은 피상적이지 않았나 싶기도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