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 성 마티아스 교회 묘지
공부하기 싫어서 한참 독어판 위키피디아 뒤져보다가 소위 역사가 논쟁으로 한 때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고, 최근에 사망한 에른스트 놀테가 거의 매주 나가는 곳 근처에 안장됐다는 정보를 접했다. 그래서 혹시나 하는 궁금증에 그곳에 또 알만한 사람이 있을까 해서 찾아봤더니 히틀러 평전으로 유명한 요아힘 C. 페스트도 사망 후 가족들과 - 바이마르 시절 고등학교 교사였던 아버지는 가톨릭 민주주의 운동을 하다 나치시절에 미운털 박혀 고생 좀 했다고 한다 - 함께 있다고하여 주말에 갈 일 있으면 한번 들러 보기로 했다. 한편으로는 이곳은 가톨릭 교회 묘지인데 두 사람 모두 마지막 안식처를 여기로 정했을 만큼 신앙 충만한 사람이었나 싶어서 -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페스트의 경우 부모님과 함께 하고 싶다는 유언에 따라 이곳에 오긴 한 모양인데 - 좀 놀라기도 했던듯.
독일 교회 묘지쯤 되면 한국의 추모공원 정도와 비교할 수 있지 않을까 싶은데 그만큼 공간이 넓으니 (사실 그 정도로 넓지는 않다. 대신 조밀하긴 하지...) 관리 사무실에 문의를 하던가 아니면 일일이 돌아다니는 수고를 하는 수 밖에 없었다. 그래도 혹시나 인터넷으로 대략적인 위치를 확인할 수 있을까 하여 가기 전에 찾아봤더니 페스트는 묘지 구역이, 놀테의 경우는 어떻게 구글 좌표까지 찍혀서 나와서 생각보다 쉽게 찾아 나설 수 있겠다 했다. 그래서 따로 문의를 하지 않고 비교적 입구 근처에 있다는 놀테의 묘부터 찾아보기로 했는데....
없었다. 그 좌표 주변을 30분 넘게 뒤졌는데도 못찾았다. 세상에 구글신도 틀릴 때가 있구나 싶은 마음에 (사무실은 마침 문닫은 시간) 일단 페스트를 찾아보기로.
... 그리고 그 구역에 가서 페스트 묘지보다 먼저 발견했다.
그리고 머지 않은 곳에 있던 페스트의 묘. 부모님이랑 같이 모셨다더니만 약간 거리가 있었음.
그렇게 삽질 아닌 삽질을 하다보니 헤맨 시간에 비해 찾아서 인사드린(?) 시간은 생각보다 엄청 짧았다. 사실 놀테는 80년대 독일 지식인 사회를 뒤흔들었다는 점에서, 페스트는 한국에도 번역된 적이 있는 베스트 셀러 저자였다는 점에서 이 분야에서 제법 유명함에도 내가 읽은 적도 없고, 아마도 당분간 읽을 일도 없을 것 같다보니 그리 큰 감흥이 없었던 것도 사실이고. 역사가 논쟁은 공부하면서 접한 수준에 불과하고 거기다 내가 그렇다고 떡밥을 던진 다른 놀테의 입장에 동의하냐 하면 그렇지도 않다보니까. (사실 동의 여부를 떠나 이미 주장의 출발점부터 문제가 있다는 게 정설인 마당에 굳이 편을 든다거나 변호를 할 이유는 많지 않겠지.....) 그나마 페스트가 쓴 책을 읽고 깨닫는 바가 있다면 모를까 (하지만 그럴것 같지도 않고, 이제와서 그 책을 읽을 것 같지도 않으니) 다시 올 일은 없을듯 싶다.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역사가 논쟁 이후 놀테는 지면에서 탈탈 털린 것도 부족한 나머지 물리적으로도 린치를 당하기까지 했다던데 이렇게 왕따가 되고 나서 받아주는 곳이라곤 소수의 보수 우파 (그것도 상당히 치우쳐진...) 진영 밖에 남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니 또 그만큼 사람들이 저 인간이 또...하고 모른척하고 그러니까 다시 얼마 안되는 받아주는 곳에 가서 한 말씀 해서 또 한숨나게 하고...의 악순환을 겪은듯. 이런 걸 생각하면 역시 까는 것도 적당히 해야 사람이 좀 덜 삐뚤어지는데...싶은 생각도 든다. 그러니까 우리는 김문수에게 사랑과 관심을 주어야 합니다. 아니면 이미 늦은 사람은 포기하고 이제부터라도 안철수를 그만 놀려야 하나.
왜이리 놀테 이야기를 많이 했냐 하면 사실 우리 선생님 성이랑 같아서. 혈연관계는 아니라고 하던데 아무래도 성도 같고 분야도 같다보니 이런저런 오해아닌 오해를 많이 사는 모양이다. 한국 선생님도 그렇고 독일 선생님도 그렇고 나는 이성동명의 그 분 때문에 지난 정권때 받은 스트레스를 생각해보면 다들 왜이러는지...어?
p.s.: 놀테 이야기로만 마무리하기 그러니까 페스트 이야기를 해보자면 - 이 역시 위키피디아에서 본 것임 - 둘째 아들이 유럽의회 의원인데 문제는 대안당 의원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