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잼란트 생존기

42. 일상다반사 (18.10.21-24.10.21)

Gruentaler 2021. 10. 25. 18:01

18일 월
출국 준비.
오전에 병원 투어. 아버지 병원 같이 다녀온 뒤에 정형외과에 가서 14일에 받은 피검사 소견을 받고, 다른 내과에 가서 비타민D 주사를 받음.
정형외과에서 내과 가는 길에 동네에 사는 고등학교 동창K를 만났는데, 이 친구하고는 인연이 좀 독특하지 않나 싶다. K와는 고등학교 3년 내내 같은반을 했음에도 그 기간에 비해서는 친하지는 않았음에도 졸업 이후에 뜻밖의 장소들에서 만나다 - 가령 대학교 1학년 때 데이트하던 강남역이라던가 신병 훈련 마치고 대기중이었던 306 보충대(!)라던가 - 급기야 이웃사촌이 되면서 연을 이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동창이 이웃사촌인 게 뭔 대수냐고 할 수 있겠지만 고등학교 다닐 무렵에도 살던 동네는 달랐고, 지금 사는 동네 역시 고등학교와는 거리가 있으니까.
아무튼 오전 중에는 병원이랑 문구점이나 드럭스토어 돌아다니면서 챙길 것 좀 사면서 돌아다녔고, 오후에는 독서실에 가서 바흐친의 “말의 미학”을 마저 읽다가 짐 정리해서 나왔다. 반나절 동안이라도 논문 자료 좀 읽고 정리하려고 큰마음 먹고 독서실도 등록해서 다녔는데 뭘 했는지는…
저녁 먹기 전에는 마지막 테니스 레슨을 했다. 재등록 없는 마지막 레슨이라 좀 설렁설렁할까 사실 걱정했는데 걱정과는 달리 다행히도(???) 제일 강도 높았다. 저녁 식사 후에는 마저 짐을 챙김.

19일 화
출국일. 오후 비행기라 좀 여유가 있어서 오전에 미용실 열자마자 가서 머리를 자르고 공항으로 출발. 공항에 사람이 없는지라 체크인이나 수화물 위탁같은 것은 오래 기다리거나 큰 문제 없이 해결했는데, 출국 수속부터 알게모르게 삽질 시작. 출국 심사 마치고 면세점 나오기 전에 잠깐 가방정리한답시고 그 앞에 있던 테이블에서 수선 떨다가 여권을 두고 나온 것을 나와서야 깨달았고, 다시 들어갈 수는 없으니 직원에게 연락하여 돌려 받을 수 있었다. 그러고 여유있게 한시간 정도 라운지에서 머물 수 있겠지 하고 먹을 것 좀 챙겨서 앉아서 탑승권을 확인하니까 지금 당장 비행기 타러 가야하는 시간이었다. 그때서야 알았지만 사실 두 시 출발 비행기인데 일어나서 집에서 나설 때부터 세 시 출발로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평소같았으면 비행기도 못타지 않았을까 싶지만 코로나 시국이라 사람이 없어서 큰 문제가 없었으니 다행으로 여겨야 할지.
암스테르담까지 가는 비행기는 여전히 사람이 없어서 편히 왔는데 문제는 늘 그렇듯이 그 다음부터. 그날따라 유난히 공항에는 공사하는 곳들이 많았고, 공교롭게도 내가 이용해야 하는 에스컬레이터나 벨트웨이, 엘레베이터들이 모두 점검중이라 이동하는데 고생을 했다. 여기에 베를린까지 가는 비행기에는 단체 탑승객이 많았는지 거의 만석이었고. 그 와중에 통로 맞은편 옆자리 커플 둘은 오징어 게임 보고 있더라.
공항에 와서 집까지는 택시를 이용했는데 거리가 멀어진만큼 비용도 거의 두배로 늘어나서 괜히 마뜩찮아졌다. 택시 기사 아저씨가 한국 좋아하는(?) 터키계 분이었다는 게 위안이라면 위안이랄까. 덕분에 오자마자 회화도 좀 하고…

20일 수
집에서 별 다른 일 하지 않고 쉬었음.

21일 목
시차에 적응하지 못하여 일찍 일어난 김에 아침에 달리기를 하였다. 돌아와서 보니까 태풍오고 있다는데 나는 그때 나가서 달리기를 했구나…
슬슬 워밍업 차원에서 논문 작업을 간단하게나마 하려 하였으나 하지 못했다. 다른 책도 많이 읽지 못했다.

22일 금
역시 시차부적응을 핑계로 하루 종일 빈둥거리다가 저녁 약속이 있어서 P와 L집을 방문. 나 외에도 손님은 K와 J가 있었고, 함께 저녁을 먹었다. 사실 근처 사는 P형한테 알게 모르게 도움 많이 받는데 맨날 그 집에서 얻어먹기만 하고 우리집에는 한번도 안못와서 내심 서운해하길래 한국 출장가기 전에 집에 초대하려 했으나 일정이 빠듯하여 이번에도 그러지를 못했다. 내년 2월에 돌아오니 그때를 기약해야지 뭐.

23일 토
오후에 테니스 치러 다녀온 것 외에는 특별한 일은 없었다. 한국에서도 레슨 받고 그랬는데 특별히 효과를 봤는지는 모르겠다.

24일 일
오전에 성당 다녀오고, 오는 길에 아시아 마트와 빵집에 들려서 먹을 것들을 약간 사왔다.
안식년을 맞아 여름에 여기 왔다는 L선생을 화요일에 보기로, 한국에 있는 동안 잠깐 집을 부탁했던 S는 월요일에 보기로 약속을 잡았다.
다음주 목요일에 학교를 가야해서 그 참에 도서관 자리를 예약하려 했는데 진작에 예약이 모두 찬 모양이다. 어쩔 수 없이 그냥 오후에 콜로퀴움만 들으러 가기로.

한 주 동안 뭔가 좀 제대로 붙잡고 읽은 책은 없는 느낌. 어떻게든 다시 들고 오지 않기 위해 허겁지겁 읽었던 바흐친의 “말의 미학”과 비행기에서”만” 읽었던 슈미트 부부 전기, 미국 독립 전후 주요 인물들을 다룬 책에 체텔카스텐을 다룬 아렌스의 책 정도이다. 아렌스 책은 생각보다 도움이 많이 되는 것으로 보인다. 체텔카스텐 방식을 도입해보려고 노력을 하였으나 번번히 막혔는데 그 이유를 이 책을 통해 알 수 있었는데 사실 그럼에도 문제점을 제대로 보완해서 할 수 있느냐는 또 다른 문제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