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gesendete Briefe

스물 즈음에 봤던 서른 즈음의 이야기를 마흔 즈음에 다시 보기 - 영화 “틱, 틱… 붐!” (2021)

Gruentaler 2022. 4. 27. 22:23



이미 고전의 반열에 오른 뮤지컬 “렌트”의 제작자 조나단 라르손이 본인의 무명 시절을 소재로 만들었다는 “틱, 틱…붐!”은 2000년대 국내에서 몇차례 공연된 바 있고, 한번은 브로드웨이 팀 내한 공연도 온 걸로 기억하고 있다. 근 20여년이 지난 지금도 이걸 어찌 잘 기억하냐고 묻는다면… 그렇다. 그때마다 보러 갔기 때문이다. 팜플렛이나 포스터는 기본이고 OST CD까지 해외 직구를 해서 들었을 정도였으니 그 시절 나는 이 작품을 꽤나 좋아했던 모양이다. 사실 그 뒤로도 종종 찾아 듣고 있고, 나중에 “렌트”도 재미있게 봤지만 “틱, 틱…붐!”이 어쩐지 여전히 더 끌린다. 다만 꿈만 많지 아직 아무 것도 이루지 못해 마음만 조급한 “서른 즈음”의 이야기를 “스물 즈음”의 내가 뭘 얼마나 잘 이해하고 공감하며 좋아했었는지는 지금 와서 생각해봐도 잘 모르겠다. 적당히 신나는 음악 안에 극중 인물들이 할법한 적당히 진지한 고민이 잘 담겨서, 라고 말할 수야 있겠지만 솔직히 그런 작품은 차고 넘치지 않았는가.
한참 원작을 좋아했던 것을 떠올리며 영화를 보려니 그 누군가의 서른살 적 고뇌를 다시, 어쩌면 이번에야말로 비슷한 처지인, 이제는 “마흔 즈음”이 된 내가 보려니 착잡한 느낌이 들긴 했으나 막상 보고 나니 괜히 나이 먹었다고 센티해져서 불필요한 의미부여를 하고 보려 하지는 않았나 싶었다. 이만하면 영화로도 재미있게 잘 옮겼다는 생각도. 음악은 두어곡 빠지거나 줄어들어 아쉽지만 새로 추가된 노래들은 그 아쉬움을 달래줄 정도로 충분히 좋았다. (아쉬운 마음에 편집된 곡을 찾아보니 삭제된 장면이라 올라오긴 했다.) 다만 작품에서 주제가인 “30/90”을 제외하고 좋아하던 노래가 예전에는 “Therapy”였다면 영화에서는 “Come to your senses”였는데, 어쩌면 뮤지컬이라는 장르와 영화라는 장르에서 보여줄 수 있는 것의 특성 차이로 볼 수도 있겠지만 그 사이에 나도 좀 변하긴 변했나 싶은 생각도 없진 않았다.
무엇보다도 영화가 의외로 원작인 뮤지컬과 가장 큰 차이를 보여주는 지점은 늘 그렇듯이 지난 시절이 - 9/11 이전의, 미드 “프렌즈”나 “섹스 앤드 더 시티”를 지금 보면서 감상에 빠지게 되는 - 꼭 좋은 시절만은 아니었다는 점을 뮤지컬에서보다 더 여실하게 보여주고 있다는 게 아닐까. 좋았던 옛 시절에도 “나 때는 말이야” 하면서 이른바 “추억보정”이라는 필터로도 어찌할 수 없는 역경을 겪은 사람들도 존재했었음은 새삼스럽지만 당연한 일이다. 90년대의 적지 않은 “서른 즈음”들이 그랬듯이, 2020년대의 많은 동년배들도 30년 후에 지금을 기억하게 되면 아마 그러겠지.

그러니까 결론은 노래를 쓰든 극을 쓰든 논문을 쓰든 뭔가를 쓰는 사람은 소처럼 계속 노오오오오오력을 해서 써야...... 어?


P. S.: 사실 극중 인물들이 겪은 서른즈음의 성장통은 훗날 스스로 돌이켜본다면 한편으로는 당연한 것일수도, 다른 한편으로는 “지나고 나니 별 일 아닌데 그때는 뭐 그렇게 심각했었나” 하고 웃으며 넘길 수도 있을 법한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원작자인 조나단 라르손이 “렌트”의 초연을 앞두고 황망하게 사망했다는 무대 뒷이야기를 듣고나면 왜 그렇게 조급했었는지 알 것 같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사실 이것도 결과론적인 판단이겠지.

P. S.: 못다한 말을 좀 덧붙이니 바로 위에 쓴 내용과 대치되는 것 같아서 하지 안하느니만 못한 말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돌이켜 보는 누군가는 언제나 있어왔으니까, 라는 말로 변명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