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zensionen

22년 8월에 읽은 책

Gruentaler 2022. 9. 3. 08:21



1. 박훈, 메이지유신을 설계한 최후의 사무라이

“근현대 일본이 어디서 왔고 어디로 가야 하는가를 생각”(S. 286)하려면 간과할 수 없는 메이지유신을 이를 이끌어나간 네 주인공 요시다 쇼인, 사카모토 료마, 사이고 다카모리, 오쿠보 도시미치을 통해 소개하는 책. 전적으로 사무라이에 의해 주도되었음에도 보통 떠오르는 "흥분하며 걸핏 칼을 빼드는" 사무라이가 아닌 "골똘히 생각하며 차마 칼집에 손을 대지는 못하는 사람"(S. 112)들이 일본의 명운을 결정했고, 메이지 유신은 그 결과물이었다. 사무라이들은 진영을 초월해서 서양 열강과 같은 외세의 개입을 고려하지도, 그렇다고 이들과 전쟁도 자제했으며, 민중 대다수는 그 모든 과정을 관망하는 데 그쳤기에 본격적인 계급투쟁은 일어나지 않았다. 즉 메이지유신은 지배층인 사무라이층 내부의 다툼 속에서 급진개혁파가 주도권을 잡아 이뤄낸 변혁으로, 전적으로 지배층이 점진적 개혁을 주도하는 ‘연속하는 혁신’이었으며, 현재 일본 사회의 특성이라 할 수 있는 - 이제는 위기의 원인으로 지적되곤 하는 - 보수성과 안정성으로 이어져 왔다. (S. 45, S. 287)
이제 한일간 “베스트팔렌 체제”(S. 291)와 진정한 선의의 경쟁이 시작되었으면 한다는 저자의 기대는 어쩐지 요원해 보이는 건 기분탓이라 하더라도 한 나라의 근대화 과정에서 나타난 폭발력(내지 폭력성)이 이웃 나라를 향해 정한론과 식민화로 이어졌고, 그 모습은 그 이웃 국가의 군사정권이 주도한 근대화와 또 다른 '유신'으로도 나타났으니 메이지 유신이 같는 역사적 의미는 일본 뿐 아니라 한국에서도 무시할 수 없음은 분명하다. 그러니 그 기분을 털어내기 위해서라도 지금부터라도 여기서 논의를 출발해야 하긴 해야…라고 마무리 하려니 어쩐지 뻔한 느낌.

현재 일본 사회가 국제적인 마인드를 중시하고 아시아와의 협력을 중시할 때는 료마가 곧잘 소환된다. (......) 반대로 일본의 민족주의를 강조하고 아시아에 대해 날선 자세를 보이는 정치세력은 요시다 쇼인을 즐겨 소환한다. (S. 166)

사이고는 서양과 근대를 배척하지는 않았지만 동시에 일본과 전통을 함께 껴안으려다 상징이 되었다. 그 상징을 통해 근대 일본인들은 허기를 채우려고 했다. (S. 178)


2. 유성호, 나는 매주 시체를 보러 간다

법의학자가 쓴 책이니 만큼 법의학이라는 다소 생소한 분야를 대중에게 소개하는 책인가 하였으나 그보다는 더 넓게, 늘 삶의 곁에 있으면서도 알기 쉽지 않은 죽음을 법의학적 관점에서 다루는 책. 그런만큼 법의학에서 죽음을 다루는 방식을 넘어 의학의 발달에 따라 죽음이 새롭게 정의되는 과정과 그에 따라 필연적으로 수반될 수 밖에 없는 문제들인 낙태, 자살, 안락사, 조력사 등을 함께 살펴봄.

사회적 커뮤니케이션이 정상적으로 이루어지고 소속감이 있다면, 가족의 일원, 사회의 일원, 어느 공동체의 일원으로 죽음에 대한 관념은 실제로 실행되지 않는다. 그런데 사회적 교류가 단절된 상태에서는 죽음에 대한 관념이 지속적으로 조금 더 쿠체화된다. (S. 175)


3. 레이프 페르손, 용을 죽인 형사, 피노키오 코에 대한 진실

지난달에 읽었던 "린다 살인 사건의 린다"에 이어 벡스트룀 시리즈를 두 권 연달아 봤다. "린다..."를 읽을 때만해도 주인공 벡스트룀에 적응하기가 굉장히 힘들었는데, 루이즈 페니의 아르망 가마슈처럼 세심한 이성과 감성과 인격의 소유자까지 못되더라도 그래도 명색이 한 시리즈의 주인공이 이렇게까지 형편없어도 될까하는 쓸데 없는 생각까지 하게 만드는, 말그대로 비호감의 결정체였기 때문에. 이 정도로 비호감임에도 못받아들일 수 없는 이유 중 하나는 어쩌면 안타깝게도 어느 조직에서나 한 명쯤은 있을 법한 진상의 전형이라서가 아닐까. 우리의 주인공 벡스트룀은 전작보다 이번 두 편에서 조금 더 유능한 모습을 보인 건 다행이었지만 해먹는 스케일도 그만큼 남달라졌다는 건 불행인듯. 아무튼 그가 매 챕터 때마다 하는 “도대체 우리 스웨덴이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모르겠다”라는 한탄을 어느새 같이 하게 될 정도로 익숙해지기 쉽진 않지만 한편의 경찰 블랙코메디라고 생각하고 본다면 - 읽다보니 미운정 든 것일 수도 있겠지만 - 나름 재미 붙이고 볼 수 있는 시리즈.

4. 이철승, 쌀 재난 국가

작년에 화제가 됐던 이 책은 동아시아, 특히 그 중에서 한국의 전통적인 쌀 생산 체제(라쓰고 쌀 집착광공이라 읽는)가 산업화 이후 오늘날까지 미친 영향을 조망한다. 쌀 생산 체제에서 만들어져 지금까지 이어져온 협업과 조율 시스템은 재난 상황과 같이 집단의 노력이 필요할 때는 알아서 잘 돌아가도록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협업 내 존재하는 질시와 경쟁, 연공제와 같은 유산으로 인해 세대 및 젠더 간 갈등이나 부동산과 복지 등에서 각자도생(에 따른 불평등)을 유도하고 있음을 지적한다.
책에서 인상적이었던 부분 두 가지를 고른다면 첫번째는 한국 국가의 성격 분석. 상시적으로 발생하는 위기에 국가가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면 백성/시민이 언제든지 들고 일어나 책임을 묻는 것이 한반도의 유구한 전통이었던 바, 이에 대응하기 위하여 국가는 (유럽식 복지국가와 같이) “강해질” 수 밖에 없었지만, 동시에 정작 평시 상황에서는 어떠한 국가의 개입도 사양하였기에 국가는 (영국이나 미국처럼) “작아질” 수 밖에 없었기에, 그 결과 한국은 “작지만 강한” 국가를 갖추었다고 저자는 판단하고 있다.
두번째는 연공제 문제. 베이비 붐 세대들은 산업화의 최전선에 투입되었음에도 막상 이와 관련한 사전 지식을 그 누구도 갖추지 않았기에 어린 시절 고향의 쌀 생산 체제에서 배운 생산 및 보상 방식을 이식, 적용했고, 이것이 바로 연공제였다. 저자는 고도의 압축성장에 이 연공제가 일정 부분 기여했을지는 몰라도 이제는 사측 뿐 아니라 노조마저 여기에 사로잡힌 나머지 한국 사회의 온갖 갈등의 핵심 원인이 되었다고 보고 있다. 여기서 저자가 산업화/근대화의 주인공으로 명령을 하달했던 정부, 특히 박정희라는 한 개인보다는 실제로 노동을 했던 개개의 “보통사람들”을 더 강조한 점은 평소 개인적으로도 생각해왔기에 공감하는 바가 많았다. 다만 연공제를 도입한 이유가 서구 산업 국가들과 달리 상공업 노동 규율이나 보상체제를 자체적으로 만들어 나갈 시간적 여유나 참고점이 없었기에 전통적인 쌀 생산 체제에서 빌려올 수 밖에 없었다는 지적은 큰 틀에서는 맞겠지만 과연 얼마나 정확한 비교일지는 조금 더 생각해봐야 할 문제가 아닐까 싶다. 여기서 사회학과 역사학이 갈리는 건가 싶긴 하지만 동서양의 발전 양상을 비교하는 부분들에서는 어딘가 대담하다는 인상을 받기도 했다. 아무튼 화제가 됐던 만큼 (긍정적 의미에서) 비판도 제법 있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좀 찾아봐야겠다.





5. 제인 오스틴, 오만과 편견 (전자책)

월초에 넷플릭스 “설득”을 보다가 문득 제인 오스틴 소설들을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렇게 본 첫 소설. 물론 영화는 보긴 했지만 도대체 왜 이제야 읽을 생각을 했나하는 느낌. 이런 정의가 많이 거칠겠지만 소설이 "근대 부르주아 산문 예술"이라고 한다면, 그리고 누군가가 소설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다른 설명 없이 이 소설을 읽어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오스틴의 다른 책들 중에 이것에 더 적합한 사례가 있는지는 더 읽어봐야 알겠지만.

6. Dan Allosso, How to Make Notes and Write

한참 유튜브에서 자료 기록-관리법을 찾아보다 우연히 미국 대학에서 역사학 선생님이 이 주제로 채널을 운영하는 것을 발견했다. 이 분이 자료를 읽고 디지털이나 아날로그로 기록해서 정리하는 방식을 설명해주는데 내용도 유익하고 이런저런 방식들을 시도해보고 솔직한 평가를 하는 것도 나름 재미있긴…한데 듣기만으로는 약간 한계도 없지 않은지라 이번에 그간 유튜브의 내용을 바탕으로 책을 냈다하여 구입해서 읽어보았다. 영어 듣기와 읽기의 문제일 수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나도 이제 구세대의 문턱에 들어서기 시작해서인지 책이 조금 더 이해하기는 쉬운 인상. 물론 이미 유튜브로 본 내용을 책으로 다시 읽어서 쉽게 느껴졌을 수도 있겠지만. 아무튼 책은 단순히 노트 작성과 정리법만 살명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여기서 어떻게 온전한 텍스트를 만들어내는지까지로 이어지니 전반적인 학술작문에 참고가 될 만한 하다. 그나저나 제일 중요한 것은 뭐가 됐든 일단 읽고 정리하고 쓰면서 시행착오도 겪어가면서 자기한테 맞는 스타일을 찾아야 하는데 그걸 오만 핑계를 대며 안하니 문제……
말이 나왔으니 하는 이야기인데 기록 관리법은 명지대 김익한 선생님 유튜브 채널도 참고하기에 괜찮았다. 기록 뿐 아니라 공부법이나 루틴 관리, 자기 계발 방법에 대해서도 영상도 올라오니 필요한 분들은 한 번 같이 봐도 좋을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