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rry Christmas, Mr. Sakamoto
사실 “마지막 황제”를 앉은 자리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본 건 군복무 시절이었다. 그렇다 해도 그 때 영화로 나온 지 이미 대략 20여 년이 다 되었을 시점이니 벌써 고전의 영역에 들어가 텔레비전에서 특선 영화로 수도 없이 방영되었기에 어린시절부터 접해왔다. 다만 채널 돌리다 나오면 보고 그러다 또 방영하면 그 지점부터 보는 식으로, 마치 퍼즐을 맞춰나가듯이 나눠서 보다 보니 제대로 봤다고 말하기까지는 어쩌면 시간이 걸렸다고도 할 수 있겠다.
그 퍼즐의 첫조각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비교적 첫 퍼즐들 중 하나가 이런저런 압박과 자신이 처한 사정을 못견디던 푸이 두번째 부인이 빗속으로 뛰쳐나가는 장면으로, 그 때 나온 배경음악이 바로 Rain이었다. 말 그대로 그 장면의 조명 온도 습도를 온전히 담아냈던 음악은 어린 시절에 강렬한 인상을 남겼던 모양이다. 어쩌면 영화 음악이라는 장르를 가장 먼저 알려준 작품이 - 영화와 음악 모두 - 아니었을까 싶을 정도로. (사실 아닐 수도 있다. 그래도 일단 그렇다고 치자.)
그 음악을 제작한 사람이 류이치 사카모토였다는 것은 중학생 때 알았다. 다른 영화 음악 제작에도 참여하고 말그대로 (대중)음악가들의 음악가로 유명한 인물이라는 사실은 즐겨 듣던 심야 시간대 라디오를 통해 알게 되면서 CD도 자연스레 여러장 구매해서 한참 듣곤 했다.
즐겨가는 카페에서 다 좋은데 선곡 센스가 너무 구린 나머지 본인이 직접 목록을 만들어줬다는 일화에서는 피식 웃기도 했고, 최근에는 당연히 본인의 잘못은 아니지만 한동안 (사실은 아직도) 좋아하던 모 음악가로 인해 같이 화제가 되면서 건강이 많이 안좋다는 소식도 접했기에 심정이 약간 복잡해지기도 했다. 물론 이보다 훨씬 더 다양하고 깊은 관련 일화가 있겠지만 당장 생각나는 건 이 정도. 생각해보니 Merry Christmas, Mr. Lawrence는 수도 없이 들었는데 정작 동명의 영화는 아직 안못봤네.
명복을 빕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