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zensionen

길 위에 김대중 (2024)

Gruentaler 2024. 3. 4. 09:40


  한국에서도 화제가 됐다는 길 위에 김대중이 지난주 토요일 교민단체의 후원으로 여기서도 학교 회의실을 빌려 상영한다 하여 보러 갔다. 마침 베를린 영화제 시즌이기도 했고 특히 화제의 k-영화 출품작 “파묘”와 공교롭게도 상영시간이 같아서 경쟁 아닌 경쟁(?)이 됐을텐데 꿋꿋하게 이 영화를 보러 온 사람도 제법 많았던듯. (은 무슨 파묘 포기하고 온 사람이 누가 있겠냐만)  교민 어르신들도 보러 많이 오셨다는 것도 인상적이었는데 생각해보니 납치 사건이나 내란 음모 사건 당시 여기서도 구명운동이 활발하게 이루어졌던 걸 생각해보면 이 분들께도 적잖이 남다르게 다가오지 않았을까 싶다. 그러고보니 최근에  마침 이 동네서 구 서독이 권위주의, 독재국가들과의 관계를 다룬 이 나왔고, 역시 시대가 시대였던지라 우리나라도 박-전 시절 동백림 사건과 김대중 내란 음모 사건을 다루면서 당당하게 한 챕터를 차지하고 있길래 영화를 보다가 이 부분이라도 조금 더 빨리 읽어봐야겠다하는 생각도 들었다.

처음 접하는 3면 동시 상영 시스템


  영화는 본인 생전에 했던 인터뷰를 비롯해서 주변 인물들의 증언과 대역들의 재연, 기록 영상들을 잘 편집해서 폭넓게 전달하지 않았나 싶다. “준비된 대통령”이라는 슬로건이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닌, 언제 어디에서도 늘 준비하고 있던, 정파를 떠나 이제는 보기 쉽지 않은 거인의 모습.

  영화가 어느 시점까지 다룰지 계속 궁금했는데 일단 후속편들을 예고하면서 5공 말 직선제 개헌 선언과 그 직후 광주 방문에서 끝이 났다. 광주에서 돌아올 때는 한 층 더 성장한 (큰) 정치인이 되었다고 평가를 내리며 마무리 했지만 정치인 김대중은 실제로 그랬을 지언정 그 다음이 어찌됐는지 우리는 모두 아니까 이래저래 뒷맛이 씁쓸하지 않을 수 없었다. 특히 계속 이랬더라면 저랬더라면 하는 생각을 안할 수가 없었던 게, 71년 선거에서 DJ가 승리했다면, 87년 선거에 앞서 양김이 단일화에 성공했다면, 90년에라도 양김 합당을 했다면 (쓰고나니 어쩐지 뒤로 갈 수록 더더욱 가능성이 희박해지는 것 같지만), 그러다 어쩌니 저쩌니 해도 그럼에도 87년 이후 실제 과정이 현실적으로는 가장 평화롭고 무난하게 민간이양과 정권교체 방식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으로까지 이어졌다보니.
 
  상영관 분위기는 영화가 진행되면서  조금씩 숙연해졌다. 아무래도 요즘 상황 생각해보면 이런 거인 같은 사람이 더더욱 생각나지 않을 수 없으니 그렇겠지만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지금 - 시국이 아닌 - 시대에 거인을 필요로 하거나 기대를 하는 게 맞는지도 모르겠고, 이런 사람이 있다 하더라도 당시 만큼의 지지를 받을 수 있는, 혹은 이 정도로 성숙해질 때까지 사람들이 기다려줄 수 있는 상황일지 잘 모르겠다보니까 보면 볼수록 심정이 복잡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대학교 신입생 때 단과대 학생회 모토는 "희망이 사라진 시대 우리가 희망이 되기 위하여" 그쯤 됐던 걸로 기억한다. 대학생이니까 할 수 있는 말이겠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좀 허세도 느껴지고, 도대체 그때 무슨 희망이 없었냐, 일말의 희망이 남지도 않은 지금에 더 필요한 말이 아니냐라고 자문해 본다. 그러고보니 국민의 정부 막바지 시절이었는데 이래저래 아이러니하군.
 
p.s. : 사실 제목이 묘하게 계속 신경쓰였다. 왜 길 위일까. 길 위 내지 길 위로 나선 김대중이 영화에 더 맞는 제목 같았는데. 제목을 영어로 Kim Dae Jung on the Road 먼저 정한 다음에 직역이라도 한 건지 아니면 내 언어감각 문제인 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