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그 자리
코로나 직전에 했던 그 소개팅은 미천한 경력에 그나마 잘 될 가능성이 가장 많았던, 최소한 아직도 그렇다고 착각할 수 있는 그런 만남이 아니었나 싶었다. 어쩐지 같이 시간을 보내면 독일 생활을 조금은 더 빨리, 잘 마무리 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약간은 이기적인(?) 동기도 없진 않았지만 무엇보다도 좋은 방향에서 나와 많이 다른 모습에 끌렸다. 하지만 상대는 별 다른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사유로, 늘 그렇듯이 그렇게 마무리되었다. 여기까지였다면 그냥 흔해 빠진 일화.
그렇지만 연락은 끊길듯 말듯 이어졌고, 심지어 한국에 잠깐 간 사이도 만났으니까 어쩌면 이야기는 이제부터라고도 할 수 있겠다. 산발적이라도 연락을 했으니 그 후에라도 기회가 있었을까. 그럼에도 원체 속 이야기 잘 못하는 성격이기도 하고 한번 까였는데(?) 자존심 때문인지 그냥 안될 인연이었고, 혹시라도 될 인연이면 이러다가도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생각에서 모른척 해버린 것도 없지는 않았다. 사실 까인 사람의 자존심 운운하기엔 실날같이 이어지던 연락의 대부분은 내가 먼저 시작해서 할 말이 없지만.
아무튼 마지막 연락은 작년 가을이었고, 그러다 근 1년 만인 이틀 전 먼저 연락이 왔다. 이런저런 안부를 주고 받다가 카카오톡 프로필이 커플 캐리커쳐인 것을 보고 짐작은 하긴 했지만 실은 봄에 결혼했다고 하길래 축하를 전했고, 돌아오면 공부하느라 수고했으니 밥사주겠다고도 하던데. 뭘까.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면 될텐데 하루 종일 그러질 못했다.
그 전에도, 그 뒤로도 호감 가는 사람이 없지는 않았다. 하지만 놀라울 정도로 그 사람들은 호감비호감을 넘어 아무런 감정이 없어 보인다는 인상에 좌절했고, 여기에 낮은 자존감 때문인지 단 한 번도 말도 못하다 (정확히 말해서는 우물쭈물하다 상대방의 신변 업데이트로 말 그대로 강제 종료되어) 혼자 마음을 접었다. 계속 그러다보니 지금부터라도 조금 더 솔직해져야 한다고 마음 먹긴 했지만 글쎄, 다시 기회가 올지는 모르겠다. 마지막 연애를 마무리하면서 했던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말자라고 다짐했건만 그 사이에 시간은 10년 가까이 지났고, 그 다짐은 이제 같은 실수를 반복할 기회가 돌아오기나 할까 하는 의심으로 바뀐지 오래인데.
메세지를 주고 받으면서 자기는 결혼하는 동안 알려줄만한 좋은 소식이 없냐고 물어보는데 나는 계속 그 자리에 있다고 했다.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었다. 누가 언제 어디서 물어봐도 나는 늘 이 자리였다. 문제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 자리에서 벗어나질 못하고 있다. 후회 없이 살기도 시간이 부족할텐데 실은 없는 후회까지 만들어서 살고 있는 건 아닌가 싶다. 이러니 하루 하루 사는 게 아니라 하루 하루 죽어 간다는 느낌이 들 수 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