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zensionen

12월에 쓰는 10월에 읽은 책

Gruentaler 2020. 12. 7. 23:30

 

 

 

1. 김영민, 공부란 무엇인가

 말 그대로 공부와 공부하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들. 이제 대학에 입학한 사람이나 중고등학교 때와는 다른 공부 방식에 혼란을 느끼는 학부생에 도움이 될 만한 내용들이 아닐까 싶지만 한편으로는 어쩌면 이런 뻔한 이야기를 지금 읽고 반성을 하는게 맞는 일인지, 다른 한편으로는 아마도 직접 도움이 될 법한 그 학생들이 이 책을 읽고 공부란 무엇인지 생각할 여유가 요즘 세상에 있기나 할지하는 쓸데없어 보이는 걱정을 하는 건 너무 나간 일일까. 

 

2. 윌리엄 골딩, 파리대왕

 무인도 조난이라는 극한 상황에서 어쩌면 순수하고 그만큼 성인들의 규범을 제대로 배웠을 (하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어리기에 이를 유지할 힘은 부족한) 소년들의 퇴행 내지 반 문명화 과정을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어쩌면 조난 동안 겪은 온갖 사건들보다 마지막 장면이 백지마냥 어떻게든 될 수 있는 이들의 성향을 잘 보여주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들고.

 내용도 내용이지만 내가 읽은 민음사 판의 경우는 번역 이야기를 빼놓을 수가 없을텐데 무엇보다 아이들의 말투가 상당히 옛스럽다보니 - 아마도 좋게 봐줘야 - 애늙은이 느낌이 드는 것도 사실이고, 그래서 이 점에서 거부감이 꽤 심할 것으로 보이지만 개인적으로는 읽는 데 큰 장애가 됐다는 인상은 받지 않았다. 1940년대 배경이니 그 당시 남은 자료들을 통해 감안한다면 그때쯤 아이들은 오늘날 동년배에 비해서 요즘 기준으로는 점잖거나 어려운 말을 쓰지 않았겠나 싶지만 번역가가 딱히 그런 점을 고려해서 옛날 말투로 번역했으리라고 생각이 들지는 없고, '세대마다 문학 고전은 새로 번역되어야 한다'는 것이 이 세계문학전집의 모토인만큼 내 변호는 별로 효력이 없을듯. 이런 식으로 역자를 대신해서 변명을 한들 내 나이만 들통날 뿐이겠지만. 

 

3. 헨리 제임스, 나사의 회전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어느 가정교사의 유령 경험담이겠지만 사실 진정 유령을 본 것이 맞는지, 아니면 그저 환상에 사로잡혀 멀쩡한 주변 사람들을 파국으로 초래한 것인지는 말그대로 독자의 독법에 맡긴 소설. 사실 어느쪽으로든 확실한 힌트가 있다면 여전히 고전이라는 지위를 유지하지는 못했을 것이, 전자라면 그냥 그저 그런 귀신 이야기가 될테고, 후자라면 히스테리에 사로잡힌 한 여자의 헛소리로 치부되면서 오늘날에는 더욱 맞지 않는 이야기가 되니까. 아무튼 그만큼 섬세하게 읽어야만 하는 책이었으나 그러지는 못했던 것 같고, 다만 이 책도 역시나 번역 논란의 중점에 있는 책인데 번역 때문에 필요 이상으로 미궁에 빠졌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는 것이 내 느낌이지만 이건 원문이나 다른 번역본을 읽어 봐야 확실히 알 수 있는 문제니 일단 여기까지. 

 

 

 

4. 스티븐 그린블랫, 폭군

셰익스피어 작품들에 나타난 폭군에 대한 고찰. 셰익스피어가 작품 활동을 할 당시 창작과 정치 사이의 관계에서부터 시작해서 폭군이 부상하여 권력을 장악하였으나 허무할 정도로 얼마 가지 않아 몰락하는 과정을 비롯하여 그리고 폭군의 적극적 지지자와 암묵적 동조자, 여기에 저항하는 주변 인물 유형들까지 비교적 얇은 책임에도 충분히 잘 다루고 있다. 책 후기에서 저자가 밝혔듯이 2016년 미 대선 결과를 보고 바로 영감을 얻어 쓴 책인만큼 시사적이며 생동감 있다는 인상도 받음. 사실 폭군은 늘 존재해왔고 앞으로도, 어쩌면 더 쉽게 등장할 여지가 생겼으니 저자의 동기는 어찌됐든 책이 의의 역시 오래가지 않을까 싶다.
 온라인 서점에서 리뷰를 보니 이 책도 역시나 번역 때문에 상당한 비판을 받고 있었는데 그 사실을 알고 나서 책을 읽어서 그런지 비문이나 오타가 없는 건 아니지만 심각한 정도는 아니었다. 적어도 내가 보기에는. 셰익스피어 작품을 인용 번역하면서 완전히 잘못 했다거나 그러면 모를까 물론 내가 작품을 충분히 다 알지는 못하지만 그런 인상도 못받았고.

 

셰익스피어는 독재자들이 권세를 오래 누린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들이 권좌에 부상하는 방식이 아무리 영리하다고 해도, 일단 권좌에 오르면 그들은 아주 무능하다는 것이 밝혀진다. 그들이 통치해야 하는 국가에 대하여 아무런 비전을 갖고 있지 못하므로, 그들은 지속적인 지지를 끌어내지 못한다. S. 192

우리가 살펴본 바와 같이, 셰익스피어는 평생에 걸쳐서 공동체가 붕괴하는 방식들을 깊이 명상해 왔다. 인간성에 대한 예리한 통찰과, 민중 선동가들이 부러워할 만한 수사적 재능을 발휘하여 셰익스피어는 혼란한 시대에 군중의 저열한 본능에 호소하면서 그들의 깊은 불안을 자신의 동력으로 사용하는 사람(독재자)을 아주 능숙하게 묘사한다. 그가 볼 때 당파 정치에 깊이 함몰된 사회는 기만적인 포퓰리즘에 특히 취약하다. 독재적 야망을 부추기는 사주 세력이 언제나 있고, 독재적 야망의 위험을 잘 알면서도 그것을 도와주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집권에 성공한 독재자를 배후에서 통제하여 기존 제도를 적절히 공격하면서 그들의 사복을 채울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극작가는 행정 능력도 없고 건설적 변화의 비전도 없는 독재자가 권력을 잡았을 때의 사회 혼란을 거듭 묘사한다. 비교적 건전하고 안정된 사회조차도 무자비하고 비양심적인 자를 물리치게 해주는 자원이 별로 없다고 셰익스피어는 생각한다. 또 그 사회는 불안정하고 비합리적인 행동의 징후를 보이기 시작하는 합법적 통치자를 효과적으로 다룰 수 있는 장치도 별로 없다. S. 244

 

5. G. K. 체스터턴, 목요일이었던 남자

 "브라운 신부" 시리즈 저자가 쓴 첩보물. 하지만 흔히 생각하는 첩보물에서 받는 냉철함이나 집요함과 같은 분위기는 거의 없다. 오히려 다들 어딘가 나사빠진 것 같고, 이런 종류의 소설에서 쉽게 느낄 수 없는, 냉소적이지 않은 밝은 기운의 유머러스함이 가득함. 

 

6. 김영민, 우리가 간신히 희망할 수 있는 것

 "추석이란 무엇인가"로 당대 최고의 에세이스트로 급부상한(?) 그 분이 드디어(?) 본인의 전공을 주제로 낸 논어 해설서. 사실 그만큼 앞서 읽었던 에세이집보다 더 의미있지 않나 하는 생각도 한편으로 든다. 어쩌면 전작들에서 던진 화두들은 결국 "(지금 바로 여기에서) 고전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으로 돌아오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7. 크리스토퍼 클라크, 강철왕국 프로이센

 소위 특수성 테제에 따라 20세기 초 양차대전과 민족사회주의라는 파국의 근본적인 원인으로 지적되어 왔던 프로이센을 위한 변명. 근대 초 브란덴부르크에서 시작하여 계몽절대군주 프리드리히 2세 시대와 비스마르크에 의한 프로이센 주도의 독일 통일, 제1차 세계대전과 나치의 정권 장악에 이르는 기간까지 널리 아우르지만 그렇다고 단순히 역사적 사실들을 나열하는 수준에 그치지 않고, 중간중간 저자의 관점과 평가도 잘 녹아 있어서 흔히 이런 종류의 통사를 읽을 때 접할 수 있는 지루한 인상은 별로 받지 않았다. 책에서 묘사된 프로이센은 전반적으로 뭔가 어쩌다보니 의도치 않게 말그대로 기존 열강들 틈새에서 역시나 모두가 원하지 않는 열강이 됐고, 그러다보니 자기도 무엇을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 좌충우돌하다가 이런 결말을 맞이 했다가 아닐지. 

 

조금 더 자세히 쓰면 좋겠지만 한두달 지났다고 벌써 내용을 많이 잊어버린 이유도 있고, 더 이상 미루기도 그래서 간략하게나마 남겨본다. 이제 11월에 읽은 책도 써야 하는데 말이지.

쓰고 보니 어쩌다 번역에 논란의 여지가 많은 책들을 읽었으나 생각만큼 번역 때문에 읽는 동안 스트레스나 고통을 받은 것 같지 않아서 그건 그것대로 좀 신기하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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