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올리는 글에서 계속 하는 이야기지만 지난달 말에 일단락 했어야 하는 일을 계속 거의 손도 못대고 있다보니 몇 주에 걸쳐서 스트레스만 잔뜩 받고 있다. 단기적으로는 당장의 생활이, 장기적으로는 학업까지 걸린 일임에도 이렇게 대책이 없어도 괜찮을까 싶은 걱정에서 벗어날 수 없어서 몸과 마음을 몸소 착실하게 갉아먹는 중이랄까. 솔직히 그럴 의지조차 이미 사라져버린 게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 정도였으니. 그러다가 결국 지지난주와 지난주 중반에 한번씩 밑도 끝도 없는 바닥을 치고 말았다. 그래도 그때마다 다행히 마음 잡아준 사람들이 있었기에 조금 정신을 차렸으니 정말 감사할 따름.
웃자고 하다보니 이제는 죽자고 달려드는 MBTI 유형 중에 T/F는 위로를 해결책에서 찾느냐 공감에서 찾느냐로 갈린다고 하는데 남들 위로할 때는 둘 다 잘 못하면서 정작 위로 받고싶을 때는 둘 다 필요한 인간인 것도 부족한 마당에, 독일 건너 온 이래로 전 기간 내내 사로잡혀있던 문제도 스트레스에 한 몫 더 하고 있었고, 특히 이 문제로 주변 사람들 괴롭힌 역사가 굉장히 유구하다보니 - 실제로 그래서 나가 떨어진 사람이 있을 정도로 - 그냥 저 인간 또 시작이군 하고 피해가도 전혀 섭섭하지 않고 이해가 갈 지경이지만 걱정과 관심을 가져주니 몸 둘 바를 모르겠다. 보고 있을 지 모르겠지만 각자의 사정으로 많이 힘들텐데 그럼에도 지나치지 않고 조언과 격려해주신 B, C 두 분 정말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다짐과 노력이 작심삼일로 일단 끝난 건 아닌가 싶긴 하지만 그래도 잊지 않도록 노력하여 꼭 결초보은 할 날이 오길 바라겠습니다. 한편으론 두 사람 모두 비슷한 처방을 내려줘서 좀 신기하기도 하고.


신부님과 스님 두 분 말빨뿐 아니라 흔히 말하는 케미도 좋아서 가끔씩 재미로 찾아 보다가 위의 말을 듣고 필요한 조언을 얻었..다고는 할 수 있겠지만 여전히 쉽지 않다. 하긴 이게 쉬우면 우리에게 사제는 필요하지 않겠지. 아무튼 독일 와서 외로움에서 자유로웠던 적은 거의 없었다. 관계에서 주는 안정감을 바탕으로 그저 해야 할 일을 빨리 끝내고 싶을 따름인데 기회조차 전무했으니 내가 주제 파악도 못한 나머지 너무 많은 것을 바라고 있는 건가 싶다. 한동안 벌받고 있다는 생각에서도 못벗어난 적도 있었을 정도였다. 물론 누군가를 만날 기회가 있었다 하더라도 계속 이어졌다고 보장할 수도 없는 일이니 그랬으면 또 그렇다고 몸부림쳤겠지만. 어쨌든 사람은 나이가 드는게 아니라 나아지고 있는 것이라고 폰타네가 말했다지만 - 여기서 생일이나 새해에 자주 쓰는 인용구라고 하는데 막상 출처를 찾아보면 나오지 않는 게 한편으로는 수상... - 나는 그렇지를 안/못하고 있으니 부담감과 조급함에 더 사로잡힌 것도 없잖아 있다. 지금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게 유일한 방법이자 최선인 걸 알지만 솔직히 그렇게 할 수 있었으면 지금 이런 번뇌에 사로잡혔을 리가 있나. 덕분에 하루 하루 사는 게 아니라 하루 하루 죽어가고 있다고 봐야 하는 게 맞지 않을까 싶을 정도.
"혼자 있을 권리 또는 예외가 될 권리를 획득해야만, 외로움의 고통이 인간의 숙명이라는 통념에서 벗어나야만, 인간은 외로움과의 관계를 역전시킬 수 있다"라고 시오도어 젤딘이라는 영국 사는 동종업계 종사자분께서 말씀하셨다지만 잠깐 누려봐야 권리이지 10년 가까이 쉬지 않고 함께하면 솔직히 구도자가 아닌 이상 그건 권리가 아니라 고통 아닌가. 아니면 (책을 쓴 당시) 결혼 20년차에 이른 기혼자의 배부른 불평인가 싶기도... 심지어 성직자이신 위의 두 분도 그랬다고 하시는데. 세상 일 안 그런 게 어디있겠냐만 알면서도 받아들이거나 행동으로 옮기는 게 참 쉽지가 않다. (참고로 테오도어 폰타네의 말과 달리 시오도어 젤딘의 말은 확실한 출처를 찾을 수 있다. "인간의 내밀한 역사"라는 책에 나온다.)


그러는 와중에 부업 중에도 힘든 일이 있었다. 업무 자체에서 비롯한 스트레스면 다 월급에 포함된 일이니 그냥 그러려니 했겠지만 솔직히 말도 안되는 일에 자연재해 마냥 휘말렸다보니 이래저래 억울한 느낌마저 들 지경. 이제는 뒤도 안돌아보고 손 털고 싶은데 어쩐지 잊을만 하면 다시 나타나서 나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까지 괴롭힐 것 같아 걱정이라 공연히 못된 생각까지 하고 있어서 걱정이다.
우울한 소리만 하면 좀 그러니까 소소하게 뿌듯했던 일화로 마무리 하자면 지난 부활절 성가대 합창 공연 때 어느 자매님을 찍었는데 한국에 있는 남편이 잘나왔다며 인화해서 책상에 올려뒀다고, 고맙다는 말을 전해왔다. 어떤 사진인가 하고 찾아보니 마침 피사체에게 햇살이 스테인드글라스 창을 지나 스포트라이트처럼 비춰져서 아이돌 홈마들 작품마냥 그럴듯하다기 보다는 노래에 열중하던 모습을 자연스럽게 잘 찍었던 것 같다. 그나저나 2년 전에 애인이나 가족 사진 찍는 재미가 있는 가벼운 기종이라는 말에 넘어가서 산 카메라인데 정작 내 애인은 여태 한 번도 못찍고 다른 가족들만 찍고 있다는 한탄을 한다면 다시 또 외로움과 욕심과 집착의 문제로 돌아가는 것일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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