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생일 전 한 주 동안, 30대로 보내는 마지막 일주일이라도 좀 후회없이 잘 지내보자 다짐했지만 역시나 허망하게 지나가버렸다.
1.
그렇게 생일은 무심하게 찾아왔고, 뜻을 세우기도 전에 잔치는 끝나버린 마당에 앞으로 닥칠 그 숱한 유혹들에는 어떻게 흔들리지 않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렇지 않아도 독일 온 뒤로 생일때마다 필요 이상으로 흔들리지 않은 적이 없었는데.
2.
생일 전후로 뜻하지 않은 축하를 많이 받았다. 그것도 단순히 의례적으로 해주는 수준 이상이라 약간 감동하기도 했는데 중년 감수성이 또 이렇게 나를 믿어주는 남들을 믿고 빚갚는다는 마음과 더불어 책임감을 가지고 사부작사부작 열심히 잘아야할텐데 솔직히 그게 쉬웠으면 내가 지금 여기 이런 글 쓰면서 이러고 있지 않았겠지. 그래도 출처 확인이 불가능한 우리 테오도어 폰타네 선생의 말을 따라, 나이가 드는 게 아니라 더 나아지리라는 다짐으로 생애 새 10년을 맞아보는 걸로.
3.
그렇다 하더라도 독일 온 뒤로 생일은 괜히 혼자 설레고 기대하며 고대하다 그만큼 허탈하게 지나가버리는, 그런 날 같다. (자매품으로는 크리스마스가 있다.) 올해도 그랬고. 내년에는 그래도 조금은 더 잘 보낼 수 있지 않을까, 그러기 위해 한해 동안 잘 살아야겠다는 다짐도 해보지만, 이미 그렇지 안/못할 거라고 지레 답을 내리고 (10년 가까이) 체념해버리는 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원하는 생일상(像)이 있는데 그걸 여기 와서 단 한번도 못해봐서 그런것일려나. 이렇게 된 게 능력부족인지 의지부족인지도 모르겠고. 아무튼 진심으로 내년 생일은 올해보다 행복했으면 하는 소망.
4.
으레 준비하던 셀프 선물도 올해는 (적어도 생일이 며칠 지난 지금까지도) 마땅히 떠오른 게 없어서 패싱한 주제에 이런 말 하긴 그렇지만 솔직히 말해서 그래도 선물 받고 싶다. 정확히 말하자면 선물 줄 사람이 필요한 걸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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