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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잼란트 생존기

필사와 함께 한 1월

by Gruentaler 2024. 2. 9.

  사실 필사는 작년부터 토마스 만 일기를 날짜에 맞춰서 하려 했지만 어쩌다 생각날 때 해본 정도였고, 본격적으로는 새해 첫날부터 하는 중이다. 여기에 버나드 쇼 산문집도 (왜 쇼인가 하면 홉스봄이 좋아하는 스타일이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는 이유 하나 만으로...) 하루에 한 페이지씩 정도도 하려고 계획을 세웠는데 이게 막상 하면 생각보다 오래 걸리는 일이라 보통 토마스 만 일기만 필사하는 걸로 그쳤다. 쇼 산문집은 일주일에 두 번 하면 많이 하는 정도였던 것 같음. 그래도 만 일기는 두어번 밀리긴 했지만 지난 1월 한달동안 꾸준히 잘(?) 따라 써왔다. 야심차게 세웠던 1년 루틴/계획 중 거의 유일하게 해낸 사항아니었을까.
  텍스트를 천천히 읽으면서 한문장씩 따라 쓰면서 독어 (거의 안하고 있지만 쇼 산문집까지 합치면 영어도) 공부 하면서 옛 필기체인 쿠렌트로 쓰면서 1차 문헌 읽는 법도 좀 익히고, 동시에 사놓고 쓸 일 없이 놀려두던 비싼 만년필(과 잉크)도 쓰는 것을 나름 필사의 목적으로 세웠으나 한 달 조금 넘게 하는 동안 마지막 것 말고는 딱히 효과가 있는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하긴 집중하면서 해도 될까말까 할 텐데 학교갔다 돌아와서 유튜브 보면서 하니 그게 잘 될리가.

  토마스 만은 소설에서도 그렇게 말을 오지게 많이 하더니만 책으로 나온 일기도 열 권 분량 가까이 된다. 1차 세계대전이 끝나갈 무렵인 1918년부터 쓰기 시작해서 사망 직전인 1955년까지 썼으니 거의 40년 가까운 시절의 기록인데, 사정은 모르겠으나 대충 바이마르 공화국이 그럭저럭 돌아가던 시절의 일기는 책으로 안나온듯 싶다. 그냥 안쓴 건지 이런 저런 이유로 썼음에도 안/못나온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몇 년 빠졌는데도 저 정도 분량이니 상당하다고 볼 수 밖에. 
  올해는 1933년 3월부터 1934년까지의 일기를 필사해보는 것으로 계획을 세웠는데 덕분에 일단 2월까지는34년 일기만 필사해하다가 3월부터는 2년치 일기를 함께 써나갈 것 같다. 하다 힘들면 그냥 34년분만 해도 되는 것이고.

말 많은 작가 양반이라지만 그래도 1월은 체감상(?) 분량이 적은 편. 이미 이 시점에서는 정권을 잡은 나치를 피해 스위스로 망명간듯.

로이트트룸 노트 앞에는 작성자가 직접 목록을 적을 수 있는 공간이 있다.
필사 시작
옛날 필기체로 써보는데 쓰고 나서 나도 잘 못알아보는 것 같아 문제.
뭐 이렇게 할 말이 많은지 두 페이지 넘게 쓰는 날도 종종 있더라
1월의 끝. 투머치토커답게 단 하루를 빼고 우리 만 선생은 1월 내내 기록을 남기심.


  필사에 사용한 노트와 필기구는 다음과 같다.
- Leuchtturm 1917 미디엄(A5) 랍스터(연빨강-진분홍 그 어딘가의 색) 소프트커버 선형 노트 (링크)
- 오로라 입실론 디럭스 만년필 (M), 오로라 블루 잉크: 본문 필사용
- 플래티넘 프레피 만년필, 파일럿 이로시주쿠 모미지(홍엽) 잉크: 날짜 기입용

   그나저나 우리 만 선생 기록을 보면서 나도 새해부터 조금씩이라도 일기 매일 써보도록 노력해야지 했는데 거의 안못쓰고 있다. 습관이란 게 무서운 거더군. 물론 필사하고 지친 나머지 그냥 자러가서가 그런 것도 있겠지만.